망기무선
망기무선 13년.
앉아서 금을 연주하는 청년 앞에 어린 소년이 앉아 노래를 듣고 있다. 아이는 익숙한 노래에 조용히 눈을 감고 듣는다. 정실의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온다. 아이는 들어온 사람을 확인하고는 인사를 올리고 방을 나섰다.
"또 그 노래를 연주하고 있구나."
"형님."
"네가 그 날 데려온 아이가 벌써 저만큼 컸구나. 시간이 이 만큼 흘렀는데도 아직 잊지 못한 모양이구나."
연주는 끊긴지 오래요, 바깥은 고요하니 못 들은 체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쉽게 대답할 수 없어 침묵으로 답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는 남희신, 그의 형이니.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에서 답을 읽었다.
"네가 그를 잊지 못해 몸을 상하게 하니 걱정되는구나."
"형님께서도 위영을 악인으로 보십니까?"
"내 대답은 이미 너도 알지 않느냐. 내 눈으로 본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
"그러나 이미 떠난 사람이다. 지금까지 행했던 모든 초혼에 답하지 않으니..."
남희신은 한 번 더 아우의 표정을 살피고는 눈을 감았다.
"내게도 그 한 번 그 노래를 연주해다오."
그는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죽은 그가 떠오를 때마다 연주한 노래는 이제 익숙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능숙하게 현 위로 흐른다.
그는 형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때면 아이와 형은 걱정되는 마음에 자신을 찾아오곤 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기우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마음이 기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손끝에 현이 닿는 감각 사이로 숙부님과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
"마음이 음흉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손에 음철이 떨어지면 필시 피바람이 불 것이라 했다. 결국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그런 이를 가까이 해 결국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구나!"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토끼는 제 둥지 근처의 풀을 먹지 않는 법이다, 운몽이 어찌 되었고 난릉이 어찌 되었느냐? 이래도 그가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냐?"
숙부님은 결국 그에게 벌로 면벽 사과를, 3년 동안 나가지 못하게 했다.
3년이면 그에게 현혹된 마음도 변할 것이요,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생각하셨을테다.
봄이 오면 눈이 녹 듯, 시간이 지나면 철이 녹이 슬듯, 이 마음도 변할 것이라고.
그도 어쩌면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에 따랐을 지도 모른다. 이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것이라고.
그러나 그의 마음은 철이 아니었으니, 시간이 지나도 그 빛이 바랠 줄을 몰랐다.
눈을 감아도 빛의 존재를 알고야 말듯이 제 감정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외면할 수 없는 제 감정은 여전히 한 사람을 쫓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홀로 그리워할 수밖에.
마음은 기울어 그 위로 물이 흐르는데, 그 마음이 향할 곳이 없으니 더욱 서글펐다.
------------------------------------------------------------------------------------------------------------------------------
"야렵을 다녀오겠느냐?"
연주가 끝나자 남희신이 물었다.
"이 곳에서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비워지지 않는다면,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다. 면벽기간도 끝났으니 너가 야렵을 다닌다한들 숙부님이 어찌 막으시겠느냐?"
현 위를 맴돌던 시선을 위로 올려 두 눈이 마주친다.
희신은 온화한 웃음으로 말을 이었다.
"괜찮다. 그러니 다녀오거라."
감사인사를 하려는 그를 손짓으로 만류하며 말했다.
"저 아이도 데려가 가르치는 것도 좋겠지. 돌아올 때엔 아이를 위한 자를 생각해오는 것도 좋겠구나. 언제까지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으니."
------------------------------------------------------------------------------------------------------------------------------
홀로 남은 방에서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수많은 문령에도, 다른 이들이 행한 초혼에도
그는 답하지 않았고 오지 않았다.
이 기다림에 끝이 있었으면 좋겠다가도, 끝이 없었으면 했다.
돌아오기를 바라다가도, 돌아와도 그를 원하는 이 없으니 차라리 오지 않기를 바라다가.
그래도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빌었다.
누구에게도 답하기 싫어 먼 곳으로 떠났는가 싶다가도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조각나 그 영혼 흔적도 없이 바스라졌나 불안하다가도
어쩌면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에 제 아버지가 어머니를 가두었듯이,
자신도 이 곳에 위영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스스로 가두었다.
평생을 제 마음과 함께 이 곳에 갇혀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형과 숙부님께는 죄송스러우면서도 평생 제 자신을, 그를 구하지 못했던 자신을, 잊지 못하는 자신을 가두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후회는 기울어진 마음을 타고 흘러넘칠 듯이 차오른다.
그 마음을 그의 형은 알고 온 것이다.
밖으로 나가 직접 그를 찾아보아도 좋다.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말고 가두지 말라.
그리고 제게 자신을 걱정하는 형이 있고 제가 데려온 아이가 있음을 넌지시 알리는 상냥함.
위영을 통해 만난 아이. 만약, 정말로 만약에 그가 돌아온다면 아이를 찾을터. 돌아온 위영에게 잘 자란 아이를 보여주는 생각을 했다. 기뻐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후회는 길었으니 결정은 빨랐다.
야렵을 가자. 저 아이를 데리고.
몇번의 야렵을 다녀온 후에 아이는 사추라는 자를 받았다.
임을 그리워해도 쫓아갈 길 없네 思君不可追
임을 쫓을 길이 없어, 마음으로만 쫓는다.
------------------------------------------------------------------------------------------------------------------------------
남희신은 동생이 무엇을 위해 빈번히 야렵을 나가는지 알고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외출이 누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려하는 것임을 알기에 막을 수 없던 것일지도 몰랐다.
바깥은 향하는 발걸음은 희신만이 알아챌 만큼 작은 기대감을 품었다가 실망과 슬픔을 담고 돌아오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책망도 위로도 별 소용이 없음을 알고 그저 아렵을 위해 바깥을 빈번히 나가도 괜찮으니 다녀오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란이 있는 곳에 함광군이 있노라 하는 소문을 들었을 때, 세상에 이미 없는 이를 찾아 모든 세상을 돌아다니니 안타까움이 앞섰다.
어릴 때처럼,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매번 같은 곳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던 날들처럼, 똑같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생을 보며 어찌 할까.
그때처럼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여겼다. 모든 고통도, 마음도 닳아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
둥근 창 바깥으로 비가 내리면
그 때의 기억을 따라 기울어진 마음 위로 물이 흐른다.
그 밑에 선 나는 후회에 젖어들고
너를 따라가지 못 했던 그날의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네가 내 마음 귀퉁이에 앉아있을 적에는 수평이 맞았는데
네가 가버린 뒤에는 어쩐지 수평이 맞지 않아 마음이 기운다.
기울어 무엇을 올려 놓든 굴러 떨어지고야 만다.
잔잔한 호수였던 마음이 기울어지니 담겨 있던 물은 흘러 쏟아진다.
마음을 잔잔한 호수삼아 안정을 찾았는데, 기울어진 마음은 계곡이 되어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물살에 휩쓸려 네가 있던 자리에 서고야 만다.
그리되면 네 흔적을 눈으로 마음으로 쫓다가 서글퍼지는 것이다.
네가 없어 내 하늘은 무너져 내린 듯 한데, 새상은 여전히 평소와 같이 여상하다.
그 간극 만큼 마음은 더 기울어 이제는 똑바로 설 수도 없고 흐르는 물에 스스로를 맡겨 휩쓸려내려갈 뿐이다.
내가 쫓는 것이 이제 와서는 너인지 너의 그림자인지 분명하지 않다.
선명했던 너의 발자취는 흐르는 물에 씻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억으로 더듬어 너를 찾는데, 이 기억이 옳은지 말해줄 이 없으니 더욱 그렇다.
------------------------------------------------------------------------------------------------------------------------------
여전히 창 밖 구름은 흘러가고, 세상 풍경은 여상한데, 이 마음은 여전히 기울어 평안이 없다.
너를 만나면 평안해질지, 아니면 잔잔히 계속 흐르던 이 물이 폭포가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가면 위영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쌓여간다.
내가 말로는 표현 못 해도 널 많이 좋아하고 있어-라던가, 혹은 지금까지 거절했던 것들에 대한 사과와 감사와 대답하지 못 했던 것들에 대한 대답들.
그는 제 형과 숙부가 무슨 마음으로 자신의 야렵을 지켜보기만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철이 아니라 금이었으매, 시간이 흘러 삭거나 녹슬지 못하고 여전히 빛나, 그의 감정을 스스로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쌓이는 것은 망각이 아니라 후회요, 그리움이니 기울어진 마음은 수평을 찾을 줄 모르고 흐르는 물은 멈출 수 없이 흐른다. 그는 이 마음이 꺾일 일도, 사그라질 일도, 멈출 날도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기운 마음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흐르는 물은 위영, 그가 제 품 안으로 오지 않는 한 쏟아져 흐르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네가 영원히 내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불안. 이 두려움은 그가 제 손을 잡아주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불안과 두려움은 종종 그를 흐리게 만들었다. 그가 초혼도 문령에도 답이 없이 십수년이 흘렀을 때
이 긴 기다림과 방황은 끝날 일이 없을 것이다. 기울어진 마음은 평안해질 수 없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함광군!!
가문의 아이들이 도움을 청해 간 곳에서 너를 봤다.
익숙한 연주 속에서 너를 느꼈고 너를 찾았다.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모든 것이 같았다.
바라만 보다가 놓쳤던 날.
그래서 아주 오래 후회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
더 이상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시 만나면 붙잡고 놓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나날들.
바라만 보지 않겠다고, 놓치지 않겠다고 속으로 했던 수많은 맹세를.
------------------------------------------------------------------------------------------------------------------------------
"남잠, 남잠! 무슨 생각해?"
"네가 없던 동안의 일."
"뭐? 그런 재미없는 건 생각하지마. 어쨌든 난 여기 있잖아?
이렇게 말액으로 묶어두기까지 했으면서 내가 없는 생각을 한단 말이야?"
"위영. 두려웠어."
"천하의 함광군이? 무엇이 무서우셨나?"
"너가 없다는 게, 다시 눈을 떴을 때 너가 없을까봐 무서웠어."
"....."
"위영, 내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내 손을 잡아줘."
".. 잡아주고 말고! 안 놓을테니까 그런 말 할 필요도 없어 남잠!"
붙잡아 당겨 끌어안는 온기. 눈을 떠도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확신.
다시 자신과 갈라서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계속 기울어진 마음을 따라 쏟아지던 물은 멈췄다.
떠난 임은 돌아왔고, 기울어진 마음은 수평을 찾아 다시 흘러내릴 일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 위영, 그가 앉아있으니.